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전과 == 파월 한국군은 적군 시체가 아닌 적군의 [[무기]], 또는 [[보급품]] 노획을 통하여 전과를 확인하고 인정받았다. 이는 소수의 시체를 여러 번 돌려 사진 찍어서 실적을 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미군이나 남베트남군 등에서 종종 있었던, 민간인이나 신원불명자 등의 시체를 끌고 와서는 전과로 보고하는 사태를 막으려 했던 의도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참전 용사들은 적군의 귀나 손가락 등을 잘라왔다고 증언하기도 하나, 공식적으로는 적군 사살 사진과 무기 두 가지로만 확인 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암시장에서 무기를 돈 주고 사와서는 적군 사살로 얻은 것으로 보고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부이며, 한국군이나 미군 헌병도 바보는 아닌지라 엄중히 조사했기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게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개망신이라 쉬쉬하면서 처벌했다고. [[김형배]]의 베트남전 만화 '황색 탄환'에서도 이 소재를 다룬 바 있다. 사실 전과 기록은 기록으로서의 가치로도, 군전략 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느 지역의 어느 적군이 전투로 얼마만큼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는 자료는 훗날 군사전략을 짜는데 큰 정보가 될 뿐더러 작전 수행에 있어 문제점은 없었는지 등등을 남길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러다 무기 노획으로 바뀌었는데 당시 참전 용사들의 수기집을 보면 떨어져 있는 총을 줍기 위해 "저기 [[훈장]]이 떨어져 있다!"라며 무모한 짓 하다가 다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즉 이 당시에는 적을 사살하는 게 아니라 총기를 노획해야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베트콩은 총기 부족으로 반드시 전사자의 총을 들고 갔기 때문에 총기 노획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당시 베트콩들은 총기 부족으로 총 없이 예비로 따라 다니는 병력들도 있었고, 특히 베트콩 4~5명 마다 여자 베트콩 1명이 따라 붙어 [[빨래]], [[세탁]] 등을 담당하였는데 이들에겐 총이 없었다. 결국 노획 총기를 통한 전과 확인이 기존의 시신을 통한 확인보다 그 기준이 매우 엄격해졌다. 한국군은 이 전쟁에서 5천 99명이 전사하였는데 베트남 전쟁이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는 점과 베트남으로 파병된 한국군의 총인원이 32만 명 정도임을 감안해볼 때 한국군이 입은 피해는 아주 크지는 않지만 [[6.25 전쟁]] 때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했던 연합군들이 그랬듯이 5천여명의 청년들이 타국에서 남베트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다 전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